복날의 복자는 엎어질 복(伏). 너무 더워서 쓰러진다는 얘기다.

입시를 목전에 둔 수험생, 홑몸이 아닌 임신부, 선풍기 하나 없는 현장에서 일하는 건설인부만 더위에 쓰러지는 게 아니다. 기업을 이끄는 최고경영자(CEO)들에게도 여름 더위는 만만치 않은 문제다. 아니, 시원한 에어컨이 나오는 건물에서 일하는 데 무슨 더위냐고. 그렇지가 않다. 직원들이 다 가는 회사 앞 유명 식당에는 마음대로 들락거리기도 힘들고, 말단 직원부터 임원들까지 학수고대하는 여름휴가도 CEO에게는 예외인 때가 많다. 주식시장에는 여름방학이 없으며, 산적한 결재서류 앞에 '더워서'라는 핑계는 통하지가 않는다. 대안은 하나, 보양식뿐이다. 사실 어떨 땐 맛있게 먹은 음식이 열흘 휴가보다 낫다. 굳이 의학적인 근거 자료가 없더라도 음식 한 그릇에 어쩐지 기운이 쑥쑥 솟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면 그게 바로 보양식이다. 서울 강남 '○'음식점. 송혜자 한국여성벤처협회장을 비롯한 CEO 4명이 자리를 함께했다. 평소 잘 알던 사이인 이들이 모인 계기는 보양식. 여름을 맞아 회사를 이끄는 육체를 건강하게 하기 위한 음식을 맛보자는 취지에서 시작된 모임이었다. 송관호 한국인터넷진흥원장이 먼저 모습을 드러냈다. 언론에 잘 보이지 않았던 양덕준 레인콤 사장도 나타났다. 이용석 엠피오 회장도 자리를 함께했다. 올 여름에는 변덕스러운 장마부터 시작해 북한 미사일 사태 등 짜증나는 일도 많다. 기업들이 느끼는 경기도 그리 좋지 않다. 회사 돌아가는 일만 생각하면 양미간이 찌푸려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어떻게 건강을 유지할까'라는 주제는 그들 사이에서도 화두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저런 대화를 하다보니 음식이 나왔다. 먼저 송 회장이 보양식으로 즐겨 먹는다는 장어 관련 요리다. 입 안에 부드러운 장어의 맛이 퍼지는 느낌이다. 두 번째로 전복과 갈비를 함께 쪄낸 갈비찜이 나온다. 흔히 먹는 갈비찜이지만 전복이 옆에 있으니 멋진 보양식이다. 마지막으로 닭고기 뼈를 발라내고 참기름에 볶은 뒤 고아낸 '초계탕'이 나왔다. 모락모락 피어나는 김이 마음을 편하게 해 준다. 반주는 소나무 순으로 빚은 송순주(松筍酒)다. 취하지도 않고 깔끔한 것이 음식맛을 돋운다. 누군가가 "1년에 한 번 이런 보양식을 먹을 기회가 있어서 좋다"고 웃었다. 사실 이들이 즐기는 음식이 늘상 이런 종류는 아니다. 때로는 인삼 한 뿌리 챙겨주는 사람에게 진심으로 감사할 때가 있다. 늘 자신이 원하는 음식보다는 주변 환경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먹게 되는 음식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송 회장은 "어느 음식을 먹든 간에 편안한 곳이 좋다"고 말했다. 이날 자리를 지배한 분위기도 '편안함'이었다. 음식 하나 하나에 정성이 들어가 있고 허투루 내놓는 것이 없다. 장미 꽃잎을 바탕에 깔고 음식을 얹어 놓아 손님에게 내놓기도 한다. 분위기 얘기만 하다보니 이야기가 점점 음식쪽에서 멀어지는 듯했다. 갑자기 송 회장이 이런 말을 던졌다. "음식이 중요한가요? 음식을 먹는 마음이 중요하죠." 이용석 엠피오 사장이 거들었다. "송 회장님은 항상 웃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젊어지는 것 같아요. 웃음이 가장 큰 보양식 아닌가 싶은데요?" 양덕준 사장도 한마디한다. "CEO라고 보양식 특별히 먹는 거 없어요. 나는 삼겹살만 먹어도 보양식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송 원장도 "스트레스를 낮추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거들었다. 이튿날 만난 이영호 증권선물거래소 위원장도 똑같은 말을 했다. 울릉도 '전복닭백숙'을 시켜 놓고 그는 "고향 음식이기 때문에 마음이 편안하다"며 "이게 정말 보양식인 것 같다"고 했다. 그는 "맛이 있다는 것은 느낌이기 때문에 아주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며 "어렸을 적 먹던 음식맛을 다시 느낄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원기를 되찾게 해 준다"고 말했다. CEO들에게도 보양식이란 따로 없었다. 마음이 편안해지는 음식이 정말 보양식이 아닐까.